우리의 전통옷

[스크랩] [한복정보] 한복의 역사

cosmos2758 2009. 3. 8. 02:20
1. 한복 이야기 - 역사
바지저고리는 북방 유목민족의 의복양식
행동하기 편하고 방한도 뛰어나… 조선 후기에 강조된 고름ㆍ동정은 우리만의 전통

한복은 바지저고리를 기본으로 한 북방계 복식에 근원을 두고 있으며, 때로는 그 위에 두루마기처럼 길이가 긴 포(袍)를 더해 입었다. 바지저고리를 위주로 한 옷차림은 고대 북방 유목민족의 일반적인 의복양식으로 기능성과 민첩성을 제공하며 방한에도 뛰어난 것이 특징이다. 여성은 치마를 겉에 입기도 했지만, 그 안에는 반드시 바지를 입었다. 조선시대는 물론 지금도 한복을 입을 때 속바지를 갖춰 입는 것은 바로 이러한 전통에서 온 것이다.


포(袍) 위주의 의복을 입었던 중국의 한(漢)민족은 그 주위의 민족들을 오랑캐로 지칭했고, 이들의 바지저고리 옷차림을 호복(胡服)이라 불렀다. 우리 민족이 중국 한족(漢族)의 전통 옷차림과 구별되는 바지저고리 위주의 옷차림을 한 사실은 고대 중국의 사서(史書)나 고구려 고분벽화에 잘 나타나 있다.

고대 우리나라의 바지저고리는 남녀 모두 길이가 엉덩이를 덮을 정도로 긴 것이었고 허리에 띠를 묶어 여미게 되어 있으며 깃, 도련(저고리나 두루마기 자락의 끝 둘레), 수구(소맷부리) 등에는 장식 선()이 둘러진 것이 특징이다.

요즘 방영 중인 TV드라마에서 고구려 건국 이전인 부족국가시대의 여성이 저고리를 안으로 받쳐 입고 치마를 그 위에 가슴 높이에서 둘러 입은 모습으로 등장하지만, 이는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것이라기보다는 무대의상으로서 미적인 효과만을 고려해 만든 디자인으로 보인다. 왜냐하면 드라마에 등장하는 여성복식은 중국 당나라 때 유행한 양식으로, 이는 우리나라에서는 통일신라시대에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이다.

동북아시아에서 중국은 가장 큰 세력으로 고대 이래 주변국가에 정치적, 문화적으로 많은 영향을 끼쳤다. 이러한 경향은 일찍부터 나타나 고구려벽화에서도 넓고 큰 소매의 포(袍)와 예복용 치마인 상(裳), 폐슬(蔽膝ㆍ정월 초하루 신하가 임금에게 하례하던 때 입던 옷이나 제복(祭服)에 딸려 무릎 앞을 가리던 헝겊) 등 한(漢)문화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.

특히 당시 문화적으로 앞서 있던 중국의 공복(公服)제도는 백제, 신라, 일본 등 이웃한 나라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. 세부적인 차이는 있지만 품급(品級)에 따라 의복의 색을 달리하여 차등을 나타내는 관리의 공복제도 등 기본 틀에 있어서는 상당한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.

또한 중국과의 교류가 증가함에 따라 일반복식에서도 그 영향이 나타났다. 예를 들어 당나라의 복식은 통일신라는 물론이고 바다 건너 일본에까지 전해졌으며, 이는 당시 동아시아에 있어서 국제적인 패션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. 통일신라시대에 남자는 복두(頭ㆍ관(冠)의 일종)를 쓰고 둥근 깃의 단령(團領ㆍ벼슬아치의 근무복)을 입었고, 여자는 소매통이 넓은 저고리 위에 치마를 가슴 높이 매어 입고 표()라고 부르는 긴 숄(shawl)을 두르는 등 당나라 복식과 같은 양식의 옷차림이 귀족들 사이에 유행했다.

이러한 모습은 경주 용강동에서 출토된 통일신라시대의 토용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.
외국에서 들어온 새로운 유행은 외래문물을 접할 수 있는 왕과 관리 등 상류층을 중심으로 나타난 것이다.

고려시대 원(元)의 지배를 받았을 때 상류층이 누구보다 먼저 원의 복식을 받아들였던 것도 한 예로 들 수 있다. 원은 고려에 자신의 복식제도를 수용할 것을 강요하지 않았지만 상류층이 앞다퉈 몽골족처럼 머리를 깎고 그들의 옷을 따라 입은 것을 보면, 훌륭하고 아름다운 우리말 어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어, 일본어 등 외국어를 섞어 써야 지적이고 세련된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는 요즘 세태와 매우 흡사하다.


자료제공 : 주간조선
 
출처 : 한복의 모든 이야기 이레주단
글쓴이 : 이레주단 원글보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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